철학이 담긴 디테일

요즘엔 Facebook 사용을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한다. 컴퓨터가 앞에 있음에도 다시 로그인을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과정이 귀찮기 때문이기도 하고 Facebook의 컨텐츠들이 점점 휘발성 정보들이 되면서 스마트폰으로 잠깐 잠깐 보는 것이 익숙해졌다. Facebook이 모바일 사용성과 광고 활성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 나의 개인적인 체감으로는 어느 정도의 성과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에 새롭게 쓰게 된 노트북으로 Facebook 접속을 시도한 적이 있다. 컴퓨터로 접속도 오랜만이었지만 새로운 device로 접속한 것은 족히 1년은 된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디테일이 나를 잠시나마 웃게 해주었다. 그 것은 바로 Facebook만이 할 수 있는 user verification (본인 확인) 기능이었다.

일단 일반적인 국내 서비스들의 본인 확인 기능들을 생각해본다면 떠오르는 몇 가지들이 있다. 가입 시에 설정해놓았던 주관식 문제에 답하기, 이메일주소/전화번호 등으로 인증번호 입력하기, 그리고 요새엔 아이핀이라는 정체 모를 서비스도 있는 듯 하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한번쯤은 이러한 본인확인 과정 때문에 짜증난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나인데 이 멍청한 컴퓨터에게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짜증나는데 그 과정까지 허접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수년 전에 가입할 때 설정한 문제와 답이 뭔지, 수십 개의 이메일 주소 중 어느 걸로 보조 이메일로 설정했는지는 아마 나보다도 내 정보를 맘먹고 캐고 있는 해커가 더 잘 알 것이다. 게다가 필자 개인적으로는 휴대폰인증이나 아이핀 또한 최악의 경험이었던 것이, 한국에서 사용하는 휴대폰은 내 명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나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아니게 되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Facebook은 달랐다. Facebook은 정말 나만이 알 수 있는 정보만을 물어보았다. 그 것은, 내 친구들이었다.

FB user verification

5명의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을 랜덤하게 보여주고 그들의 이름을 맞추면 이 멍청한 컴퓨터는 이 접속자가 나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단 몇 초 만에 본인인증을 마칠 수 있었고, Facebook만이 할 수 있는 기능에 한동안 망각하고 있던 Facebook의 힘을 느꼈으며, 잠시나마 잊고 지냈던 5명의 친구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이 과정이 특별한 이유는 크게 세가지: 본인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적으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었고, 모두가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있어야만 하는 이 계륵을 재미있게 만들었으며, Facebook의 철학을 그대로 담아서 본인확인 과정마저 Facebook의 하나의 경험으로 녹여내었다는 점이다.

Facebook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의 목표는 똑같다. 세상을 더 가깝게 하자. 물론 상장 이후에는 돈을 벌겠다는 목표가 더 커진 것 같아 아쉽지만 이번 기회에 ‘그래도 Facebook이니까 이만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가 이 잠깐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제품/서비스의 하나하나가 회사의 철학 (특히 회사가 팔고 있는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을 때, 그래서 소비자가 그 철학의 진실성을 경험할 때라는 것.

하지만 이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나 또한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비자들을 감동시키기에 실패하였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또한 이 철학을 확실히 믿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사업에, 제품에, 회사에 철학을 담아내려면, 남에게 팔기 전에 나부터 그 철학을 믿어야 하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