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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 Curry와 혁신

warriors (스타트업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Golden State Warriors)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농구팀(주니어 레벨, 4군)에서 포인트 가드로 뛴 적이 있다. 친구들과 놀면서 할 때와 달리 처음으로 (그 것도 미국에서!) 체계적인 팀 농구를 하다보니, 다양한 작전과 전략을 항상 생각하면서 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제품에 대한 상상을 하며 창업을 준비할 땐 재밌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면 골머리 썩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하루는 경기가 끝난 후, 체육관의 트레이너가 내 발목의 붕대를 풀어주며 잠깐 대화를 나눴다.

트레이너: “미덥, 너는 공을 잡으면 제일 먼저 뭘 하니?”

나: “음.. 골대에 더 가까운 동료를 찾아 패스를 해야죠. 만일 마땅치 않으면, 상대 수비가 맨투맨인지 지역방어인지에 따라 스크린을 이용해서 돌파하거나 볼을 돌려서 수비대형을 뒤섞거나 해야죠. 그러다 보면 빈 공간이 나올거고 그 쪽으로 드리블 해서 파고 들어야죠.”

트레이너: “맞아. 근데 그 이전에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그 건, 슛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거야. 그리고 슛을 할 수 있으면 슛을 해.”

맞다. 농구는 슛을 해서 공을 림 안으로 넣어야 점수를 얻는 경기이다. 게임 안에 있다 보면 게임에 함몰돼 경기의 본질과 목적을 잊게 된다. 골대에 가까운 동료에게 패스를 하는 것도 슛을 하기 위함이고, 빈 공간을 만드는 것도 결국은 슛을 하기 위함이다. 이 중요한 깨달음을 얻고… 나는 결국 더 머리가 복잡해져, 농구를 그만 두게 되었다.

요즘 NBA를 보면서, 구체적으로는 농구라는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Golden State Warriors를 보면서 매우 오래된 이 대화가 새삼 떠올랐다.

농구의 룰은 간단하다. 공을 던져 림 안으로 제일 많이 넣은 팀이 이긴다. 하지만 멀리서 공을 던져서는 딱 공만한 크기의 림 안으로 넣는 것이 매우 어려우니, 슛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골대 가까이 가서 던지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매우 당연스럽게도 골대에 다가갈 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더 큰 놈들이 버티고 수비를 한다.

이제까지 NBA의 역사를 봐도, 대부분 빅맨들이 팀의 성적에 가장 직접적인 기여를 해왔다. 윌트 체임벌린, 빌 러셀, 카림 압둘 자바,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 팀 던컨, 등.. 역대 리그의 강팀들은 모두 슈퍼스타 빅맨들을 보유해왔다.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같은 화려한 플레이어들도 결국은 빅맨의 서포트 위에서 날아다닐 수 있었다.

강-2 (슬램덩크에서 강백호는 농구 초짜이지만 천부적인 신체능력으로 골밑을 제압하면서 팀의 중심이 된다)

그 동안의 빅맨 중심의 농구 패러다임을 보면 마치 대기업들이 장악을 하고 있는 제조 산업을 보는 것 같다. 덩치도 덩치지만, 일단 대기업은 기본적으로 리스크보단 안전,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이 것 저 것 다 분석하고 비교하고 결국은 upside가 큰 쪽 보다는 downside가 작은 쪽을 선택한다. 뭐 하나 만들려면 부지도 사고, 생산 라인도 깔고, 수백 수천 명의 생산과 영업 인력, 수십 수백만의 물량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가드에서 포워드로, 포워드가 다시 센터에게 공을 순차적으로 전달하듯, 대기업은 공을 잡게 되면 치밀한 전략부터 짜고 연구/개발 – 생산 – 마케팅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물건을 만들기 전부터 얼마나 팔릴지 대충이라도 알아야만 공격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은 엄청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안전한 선택은 저들에게도 안전한 선택이고, 골대에 가까워져서 슛은 좀 더 용이하지만, 상대팀과의 차별은 없다. 가끔 발 빠른 가드나 화려한 스몰포워드가 코트를 휘젓고 다니듯 기발한 마케팅으로 차별을 두지만, 결국엔 가격으로 승부하고 제로썸 경쟁을 한다. 그리고 아주 미세한 차이로 승부가 갈리고 시장이 정리된다.

그런데 NBA 탄생 이래 크게 바뀌지 않았던 농구의 패러다임이 지금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2014-2015 시즌 챔피언 팀 Golden State Warriors(이하 워리어스)가 있고, 또 그 핵심엔 Stephen Curry(이하 커리)가 있다.

curry(농구의 게임을 바꾸고 있는 Stephen Curry)

그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아주 간략히 그의 짧은 업적을 정리하자면.. 슛은 곧잘 했지만 작은 신체 조건과 다소 떨어지는 운동 능력 때문에 실력에 비해 과소평가를 받으며 2009년에 NBA에 데뷔한 그는, 꾸준히 성장하며 2013년에 레이 앨런(살아있는 전설 슈터)의 단일 시즌 최다 3점슛 기록을 깨면서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로 매년 리그 역사의 모든 3점슛 관련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도배하고 있다. 그 것도 다시는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인간계를 넘어서는 성적으로 말이다. 특히 현재 시즌(15-16)에는 50% 이상의 3점슛 시도율에 거의 50%에 육박하는 성공률을 장착해 진정한 사기 캐릭터로 거듭났다. 이런 선수는 단언컨대 NBA 역사 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아름다운 3점슛들을 잠시 감상하자)

그의 미친 3점슛 능력이 특별한 이유는, 그는 굳이 경쟁이 심한 골밑으로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말도 안되는 거리에서, 그 누구도 감히 슛을 시도하지 않는 거리와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슛을 넣어대는데, 상대편은 정말 정말 손 쓸 방법이 없다. 그의 미친 장거리 3점슛 비거리 때문에 상대편은 매순간 하프코트에서부터 프레스 디펜스를 해야할 판이다. 그는 이전에 존재했던 슈퍼스타들과 전혀 다른 종류의 전율을 일으킨다.

개똥슛(슬램덩크의 정우성도 개똥슛을 통해 빅맨들의 블락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커리를 중심으로 한 전례 없는 3점 중심의 공격 (혹은 스몰라인업) 농구를 하는 워리어스 팀의 성적 또한 리그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이번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24연승을 하며 미국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긴 개막 연승 기록을 기록했고, 아직도 홈에선 40연승(16.01 기준)으로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지금의 페이스라면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세웠던 불멸의 시즌 72승 기록을 깨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더 재밌는 점은, 나머지 29개 팀들이 이 사기적인 팀을 어떻게든 이겨보기 위해서 워리워스를 상대할 땐 (어쩔 수 없이) 본연의 플레이 방식을 버리고 스몰라인업 공격으로 맞불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실패한다. 그들에겐 커리같은 슛터가 없을 뿐더러, 워리어스가 오랫동안 쌓아온 저력을 금세 베낀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 많은 대기업도 한번 궤도에 오른 스타트업은 이기지 못하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빅맨 농구가 대기업의 방식이었다면, 커리의 농구는 스타트업의 방식이다. 스타트업은 대개 기성 기업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사소한 것에 집요하게 파고든다(성공률이 낮은 3점슛을 던지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라고 치부하던 때도 있었다). 골밑으로 들어가봐야 덩치에 밀려 상대가 안되지만, 또 굳이 경쟁을 할 필요도 없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격을 한다. 골밑슛보다 성공률은 떨어지지만, 슛 시도는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렇게 슛 시도를 많이 하다보면 성공률은 높아지고, 성공을 밥먹듯이 하는 연쇄창업자들이 탄생한다. 미국엔 리처드 브랜슨이나 페이팔 마피아, 국내엔 5Rocks의 노정석 창업자, 버즈빌의 이관우 대표, 빙글의 문지원/호창성 대표 등이 대표적인 3점슛터이다.

혁신은 이렇게 일어난다. 생각지도 못한, 혹은 불가능해 보이는 방식으로 새로움을 만들고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Peter Thiel이 “Zero to One”에서 말하는 ‘창조적 독점‘처럼 말이다.

커리의 예측 불허의 플레이들을 보면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흥분이 된다. 사실, 나는 언더독 성향이 강해서 강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워리어스와 커리는 다르다. 아마 그 이유는 그들은 남들이 잘 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1 to n’이 아닌 ‘0 to 1’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스타트업처럼 말이다. 그들의 독점이 오래 갔으면.. 그리고 그들의 게임이 새로운 기준이 되는 걸 목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Artistic Intelligence

최근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대부분의 hype들이 그렇듯 인공지능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1940년대부터 공론화 되었던 개념이고, 헐리우드에서도 끊임없이 다루는 단골 소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인공지능 = 인류멸망’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따른다.

물론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극단적인 일이 당장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분명 인간 고유의 영역이던 ‘노동’에는 이미 큰 변화가 다가오고 있는 건 사실이다. 노동시장의 구조가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바뀌고, 근 미래에 또 다른 산업혁명이 일어날 것처럼 보인다. 점점 스마트해지는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기자, 의사, 변호사, 변리사, 자산관리사 등의 전문직 노동자들도 인공지능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참고: http://www.lgeri.com/industry/general/article.asp?grouping=01030100&seq=259)

여기까지는 많은 분들이 이미 걱정해주는 부분인 것 같은데.. 이제까지 어떠한 곳에서도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영역이 있는 것 같다: “예술”. (똑똑하신 분들은 배고픈 영역엔 관심 없는건가..)

컴퓨터가 예술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상상하기 어렵다. 예술은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일인데 그 걸 컴퓨터가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막말로, 수많은 랜덤 변수와 색채이론을 반영한 색 조합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컴퓨터가 포토샵에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과 비슷한 그림을 뚝딱 뚝딱 그린다 한들, 그게 어찌 예술이겠는가. 인정하기 어렵다.

jackson_pollock

하지만, 이 인정하기 싫은 일이 조만간 일어나고, 컴퓨터가 예술가들의 노동력 조차도 빼앗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인정 따위는 묻지도 않은채 말이다. 이게 말이 될까?

3가지 전제 하에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1. 예술은 패턴의 조합이다: 사실 예술은 창조가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세상에 흩뿌려진 수많은 정보들을 조합하는 것이 예술이다. 미술, 음악, 영화, 디자인 등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창작자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을 새로운 (혹은 새로워 보이는) 형태로 재조합한 것의 결과이다.

인공지능도 똑같다. 수많은 데이터(빅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프로세서)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머신러닝, 딥러닝) 새로운 통찰을 만드는 것이 인공지능의 기본적인 구조이다. 만약 예술가들의 사고패턴에 대한 데이터만 일정량 확보한다면, 컴퓨터가 예술을 한다는 이야기가 그리 허무맹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2. 예술은 노동이다: 창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술 분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노가다’가 필요하다. 단순하게는 자르기, 붙이기, 찾기, 버리기와 같은 단순 노동부터, 색조합(미술), 화성학과 코드진행(음악), shot variation(영화)와 같이 전문성을 요하는 노가다까지.. 예술도 수많은 노동의 결과물이며, 인공지능이 창출할 생산성의 value add 폭이 매우 클 것이다.

3. 예술? 이제는 엔터테인먼트다: 예술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예술은 ‘작품=예술가’였다. 컴퓨터가 모나리자를 그린다고 그 컴퓨터가 다빈치가 되는 것이 아니며, 때문에 그 것은 상품가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작품과 예술가의 연계성이 매우 적다. 영화의 경우엔 작품의 규모가 커서 수많은 창작자들의 input이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음악의 경우엔 가수, 작곡가, 작사가, 편곡자, 프로듀서의 분업이 세분화되기 때문이다. 작곡을 컴퓨터가 하든 인간이 하든, 듣기 좋으면 그만이고 차트에 오르면 장땡이다. 우리가 음악, 영화, 소설과 같은 예술분야를 “엔터테인먼트”로 분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예술의 영역도 인공지능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사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데, 구성요소가 비교적 단순하고 패턴 조합의 경우의 수가 적은 음악 분야를 시작으로 예술 AI 기술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 예일대 교수가 개발한 ‘쿨리타(Kulitta)’는 바흐 스타일의 협주곡을 순식간에 작곡하고, Youtuber들을 위한 BGM 생성 서비스 (Jukedeck, http://www.jukedeck.com), AI 기반 자동 음원 마스터링 서비스 (Landr, http://www.landr.com) 등의 스타트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음악은 일찌감치 인공지능의 첫번째 타겟이 되었고, 조만간 실질적 가치를 만들어낼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다음은 아마 영상 편집이 되지 않을까? 영상은 음악보다 훨씬 복잡한 형태의 데이터와 판단 프로세스를 요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Computer Vision 기술의 발전이 동반되면서 컴퓨터가 영상의 정보를 인지하는 능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아래 ‘Videos in Sentences Out’ 영상 참고). 이를 통해 컴퓨터가 직접 영상을 보고 NG컷을 판단하고, 다양한 shot variation을 시도해보고 최적의 결과물을 (사람보다 잘)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나 영화같이 제작/유통이 이미 디지털화 된 분야는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미술은? 물리적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순수미술은 인간의 영역이 아직까지 크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순수미술 또한 ‘예술’이라는 인식의 변화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주시해봐야 할 것 같다. 혹시 모르잖나? 피카소의 혼을 담은 로봇 팔이 개발되어 이 로봇이 그림을 그리는 족족 수백만불에 거래가 될지.

물론,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예술가의 사고패턴에 대한 유의미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디지털 데이터를 보유한 구글, 페이스북, IBM도 이런 데이터는 없지 싶다. 하지만, 각 예술 분야에서 당장 필요로 하는 서비스 사업을 통해 유의미한 데이터를 차차 축적해낸다면, 그 어떤 인공지능보다 차별화 된 “인공지능 예술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