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커버그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이다”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얘기했다.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사실상 실리콘밸리의 공식 표어이다.
실리콘 밸리의 작은 집. 4~5명의 geek들이 ‘세상을 바꾸겠다’며 창업을 한다. 그들은 자기의 제품과 기술이 뛰어나다며 창업대회에 출전하지만, 막상 가보니 개나 소나 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다.
이들이 바꾸려는 세상은 대체 뭘까? 그들이 생각하는 이 세상의 문제는 무엇일까? 어쩌면 세상은 그다지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나쁘지만도 않은 것은 아닐까? 그들이 보는 사회의 단점은, 꼭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HBO의 인기 시리즈 Silicon Valley가 6번째 시즌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실리콘 밸리는 근 3~40년간 미국과 글로벌 경제의 핵심이었으니, 그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물은 소재만으로 충분히 대중적 인기를 끌만 했다. 딱 적당한 미국식 유머에, 리얼한 연출, 적절히 고증된 창업 스토리는 나의 취향에도 딱 맞았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실리콘 밸리를 맹목적으로 우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모순과 허접함을 희화화하는 쪽에 속한다.
나는 최근에 마지막 시즌을 몰아서 보았고, 마지막 에피소드에 도달하기 전까진 사실 매우 실망스러웠다. 여느 시리즈물이 그렇듯, 정해놓은 결말까지 조급히 달려가는 전개가 다소 억지스러웠고, 제작의 한계 때문인지 에피소드 수도 적어 이전 시즌들보다 특유의 색을 잃은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마지막회는 이러한 실망을 불식시켰다. 결말은 대충 이렇다. 주인공의 회사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촉망받는 회사가 되고, 세상이 주목하는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런칭 바로 전 날, 그들의 인공지능이 세상의 모든 보안 체계를 뚫을 수 있는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카이넷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6년간 온갖 고난을 뚫고 드디어 정말 세상을 바꿀 기술을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이걸 세상에 내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의 결정은 당연히 폐기. 그런데 그냥 폐기가 아니라, 그 누구도 다시 시도하지 못하게, 일부러 처참한 실패를 가장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실패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10년 뒤로 넘어간다. 세상의 변화를 울부짖던 그들은 여전히 그런대로 각자 잘 살고 있다. 허무하게 끝난 6년의 여정 이후, 그들은 아주 평범하게, 잘 산다. 세상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고, 또 살만하다.
잠시 치열함에서 벗어나 작은 성취를 기념할 때 그들이 하던 게임, Always Blue. 파란색이 나올 때까지 게임이 이어지고, 계속해서 파란색이 나오길 바라는. 파란색의 행렬이 이어질 땐 긴장되지만, 노란색이 나왔을 때 게임이 끝나며 비로소 환하게 웃는 그 게임. 게임은 끝나도 괜찮다.
이렇게 이 드라마 또한 결국 허무함을 얘기하며 끝을 맺는다. 하지만, 실패와 허무함 뒤에는 곧 평안이 따라온다는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상을 바꾸지 않더라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내 세상도 그렇다. 허무하단 건, 나는 더 나은 곳에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